사랑하는 C 선생님께. 저는 가난한 젊은 화가 A입니다. 오늘은 제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어느 흐린 날, 저는 점심때가 되도록 방바닥에 누워 있었습니다. 젊은 아내는 옆에서 제 두루마기 끈을 달고, 어린 아들은 방 한쪽에서 자막대기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아내가 말했습니다. “날이 점점 추워지는데, 월급 받으면 아이 모자 하나 사 오세요.” 저는 못 들은 척했습니다. 그림 도구와 책도 사야 하는데, 돈 이야기만 들으면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이가 “때때모자? 엄마!” 하며 웃었습니다. 아내도 웃고, 저도 결국 웃고 말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저는 월급을 받으면 꼭 모자를 사 주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친구들이 있는 MW사에 가니, 친구 DH와 WC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앉아 있었습니다. 시골에 사는 친구 NC의 아내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이 온 것입니다. NC는 가난하지만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는 시를 쓰는 사람입니다. 우리 세 사람은 그날 기차를 타고 NC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NC는 우리 손을 잡고 말했습니다. “나의 아내는 삼십 분 전에 세상을 떠났네.” 처음 보는 NC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함께 울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NC의 집에 머물며 장례에도 함께했습니다.
서울에 돌아와서, 저는 SO의 집에 갔습니다. SO는 한쪽 다리가 없는 스무 살 여성입니다. 늙은 어머니와 둘이서 남의 집 곁방에 살며 바느질로 겨우 먹고삽니다. 그날 SO는 울고 있었습니다. “저는 다리가 하나 없는 사람이지만, 저에게도 뜨거운 마음이 있어요. 저를 길이길이 사랑해 주시겠어요?” 저는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제 눈앞에 젊은 아내와 어린 아들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SO가 불쌍했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영원히 SO 씨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저는 이 말만 하고 나왔습니다.
그 뒤 저는 그림을 가르치는 학교에 갔습니다. 그날은 월급날이었습니다. 저는 월급 이십오 원으로 아이 모자와 아내의 목도리를 사리라 생각했습니다. 수업 시간에 숙제를 해 오지 않은 가난한 학생이 울면서 말했습니다. “집에서 돈이 없다고 도화지를 사 주지 않아요.” 저는 그 학생을 꾸짖을 수 없었습니다. “당신의 눈물 한 방울은 그 그림보다 몇 배나 값있는 것이오.”
수업이 끝나고 받은 봉투에는 십칠 원 오십 전만 들어 있었습니다. NC의 집에 가 있던 일주일 동안의 돈을 학교에서 빼 버린 것입니다.
저는 저도 모르게 다시 SO의 집 앞에 와 있었습니다. 안에서 SO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SO야, 이제는 길거리로 쫓겨나게 되었구나.” 집세를 내지 못해 그 집에서 쫓겨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봉투에 연필로 'A'라고 쓰고, 문을 소리 없이 열어 마루 위에 그 돈을 놓았습니다. 그리고 도둑처럼 뛰어나왔습니다.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가 모자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제 주머니에는 이제 한 푼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제 마음은 기쁘고,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MW사로 가서 친구들에게 말했습니다. “나의 한 달 노력의 값은 참으로 값있게 써 버렸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