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중 1장 · A2 · 쉬움
동묘의 도깨비불
도시와 유령
사람들은 깊은 산골이나 무덤 옆, 낡은 물레방앗간에 귀신이 나타난다고 한다. 나는 그런 곳에서 귀신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더 놀라운 유령을 보았다. 그것도 문명의 도시 서울에서 말이다.
나는 동대문 밖 학교 짓는 곳에서 일하는 미장이다. 뜨거운 여름 해 아래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멘트를 섞고 모래를 쳤다. 일이 끝나면 일본인 감독에게 삯을 받아 술집에서 한잔했다. 술만이 피로를 잊게 해 주었다. 나에게는 잠잘 방도 없었다. 그래서 여름 내내 서울 여기저기에서 한데 잠을 잤다.
그날 밤도 나는 친구 김 서방과 술을 마시고 잠잘 곳을 찾아 동묘 앞까지 갔다. 동묘 대문간에는 벌써 우리 같은 사람들이 가득 누워 자고 있었다. 그런데 안쪽 문이 반쯤 열려 있었다. 우리는 비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 처마 밑에 앉았다.
그때 김 서방이 내 팔을 꽉 잡았다. “저게 뭔가!” 건너편 정전 옆에서 파란 불덩이 몇 개가 땅을 기다가 날다가 꺼지곤 했다. 나는 웃었다. “하하, 개똥불(반딧불)이야.” 그리고 돌을 던졌다. 그런데 불은 흩어지지 않고 한곳에 모여 우리를 노려보았다. 불빛 속에 머리를 풀어 헤친 하얀 모습이 보이고, “흥, 흥” 하는 신음 소리도 들렸다. “에그머니!” 우리는 정신없이 동묘 밖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동대문 담 밑으로 갔다. 나는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았다. 그런데 엉덩이 밑에 무언가 물컹한 것이 있었다. “어떤 놈이야, 이게!” 날카로운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또 미친 듯이 달아났다. 하룻밤에 두 번이나 도깨비에게 혼이 난 것이다.
다음 날 점심때, 나는 일꾼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대머리 박 서방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도깨비라면 나는 밤마다 보네. 우리 집 옆 빈집에도 밤마다 불이 켜졌다 꺼졌다 하고, 떠드는 소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지. 동관이나 종묘에 가 보게. 그런 도깨비가 우글우글할 테니. 오늘 밤에 다시 가서 잘 보게. 그러면 다 알게 될 거야.”
그날 저녁, 나는 몽둥이를 들고 혼자 동묘에 갔다. 정전 옆에 머리를 풀어 헤친 두 그림자가 있었다. 나는 몽둥이를 들고 달려갔다. 그런데 그것은 도깨비가 아니었다. 거지 어머니와 어린 아들이었다. 여인은 손을 모아 빌었다.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 줄 알면서도 갈 데가 없어서…….” 어젯밤의 불은 여인이 아픈 다리에 약을 바르려고 그은 성냥불이었다.
여인이 다리를 걷어 보였다. 한쪽 발목이 없고, 다리는 나뭇가지처럼 말라 있었다. “공원 앞에서 그 원수의 자동차에 치였어요.” 나는 기억이 났다. 한 달쯤 전, 공원 앞 큰길에서 자동차가 여자를 치는 것을 보았다. 자동차 안에는 불량배와 기생들이 가득했다. 그 옆에서 거지 아이가 울고 있었다. 바로 이 모자였다.
나는 눈물이 났다.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여인의 손에 쥐여 주고 그 자리를 뛰어나왔다. 이제 나는 박 서방의 말을 알았다. 서울의 유령은 바로 나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살아 있지만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 서울이 커지고 번창할수록 이런 유령은 점점 늘어 간다. 독자여, 어떻게 하면 이런 유령이 생기지 않게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