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 마지막 날, 나는 전보 한 장을 받았다. '조모주 병환 위독.' 할머니가 많이 아프시다는 뜻이다. 할머니는 여든두 살이 넘었다.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년 봄부터 기운이 점점 약해지셨다. 나는 그날 기차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떠났다.
새벽 세 시가 지나서야 집에 도착했다. 마당에 거적으로 덮은 작은 움막이 보여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벌써 돌아가신 걸까? 하지만 할머니는 아직 살아 계셨다. 할머니는 흐린 눈으로 나를 보다가, “응, 네가 ○○이냐…….” 하며 내 손을 꼭 잡으셨다.
할머니 곁에는 둘째 숙모가 있었다. 숙모는 효성이 깊기로 집안에서 유명했다. 불교를 믿는 숙모는 밤새도록 염불을 했다. 나는 그 정성에 놀랐다.
곧 여기저기 흩어져 살던 자손들이 모여들었다. 방은 셋밖에 없어서, 우리 젊은 사촌들은 이웃집 방을 빌려 잠깐씩 쉬었다. 그런데 숙모는 자꾸 우리를 불렀다. “할머니가 이렇게 위중하신데 너희는 잠만 자느냐! 나는 한 달이나 밤을 새웠다.” 가장 어린 내가 늘 꾸중을 들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 방 문지방 위에 지팡이와 신발이 놓이고, 벽에는 불경이 걸렸다. 돌아가시려나 보다! 우리는 모두 할머니 곁에 모였다. 십 분, 이십 분이 지났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잠이 드신 모양입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관까지 미리 만들어 놓았다. 내가 처음에 본 마당의 움막은 그 관을 두는 곳이었다. 자손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 지쳐 가고 있었다.
할머니는 정신이 드는 때가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자꾸 일으켜 달라고 하셨다. 숙모가 염불을 하면, 염불을 그렇게 좋아하던 할머니가 “듣기 싫다! 나는 일어날란다!” 하고 소리치셨다. 하지만 숙모는 할머니를 일으켜 드릴 수 없다고 했다. 할머니가 옷에 실수를 해도 바로 빨아 드리지 못해서, 엉덩이 살이 다 벗겨지는 상처가 났기 때문이다. 상처를 본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팠다. 자손은 많은데, 누구 하나 할머니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모두 먹고살기 바빴던 것이다. 어느 날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말씀하셨다. “○○아, 내 청 하나 들어주겠니? 나 좀 일으켜 다고.” 내가 할머니를 일으키려 하자 숙모가 말렸다. 그러자 할머니는 울 듯한 목소리로 나를 보고 “서방님! 제발 나를 좀 일으켜 주십시오!” 하고 외치셨다.
배즙을 가지고 들어오던 형수가 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며느리들이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듯 모여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일으켜 드리려 했지만, 할머니는 “아야야……” 하고 아파하셨다. 그러더니 할머니는 내 조끼 단추를 잡아당기며 “벗어라, 답답하지 않니?” 하셨다. 여기저기서 웃음소리가 났다. 나는 웃는 사람들이 미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도 웃음이 났다. 나도 이웃집 방에 가서 이 이야기를 하며 크게 웃었다.
이웃집 방의 사촌들은 모두 바빴다. 변호사도 있고, 은행원도 있고, 회사원도 있었다. “곧 돌아가실 것 같지는 않은데, 일 때문에 가야 하는데…….” 그래서 의사를 불렀다. 갓을 쓴 한의사는 진맥을 하더니 “워낙 늙으셔서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겁니다.” 하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 저녁부터 할머니는 오히려 좋아지셨다. 약을 발라 드린 상처도 나아서, 부축을 받아 앉아 계시기도 했다. 이번에는 서양 의사를 불렀다. 서양 의사는 이삼 주일은 걱정 없다고 했다. 바쁜 큰형은 그날 밤에 떠났다.
다음 날 아침, 숙모가 웃으며 말했다. “할머님이 오늘 아침에는 혼자 일어나셨다.” 방에 들어가니 할머니가 정말 진지를 잡수시고 계셨다. “할머니, 어떻게 일어나셨습니까?” “내가 혼자 일어났지. 나쁜 놈들, 아무리 일으켜 달라고 해도 일으켜 주어야지. 이제는 나 혼자라도 일어난다.” 할머니는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할머니가 곧 나으신대요.” 내가 말하자 할머니의 얼굴에 오랜만에 기쁜 웃음이 떠올랐다. 내 눈에는 눈물이 핑 돌았다. 그날 밤 자손들은 모두 흩어졌고, 나도 서울로 돌아왔다.
어느 아름다운 봄날이었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나는 봄옷을 차려입고 친구들과 벚꽃 구경을 가려던 참이었다. 그때 뜻밖의 전보 한 장이 왔다. '오전 3시 조모주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