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자정이 훨씬 넘었다.
이웃의 닭 소리는 검푸른 새벽빛 속에 맑게 흐른다. 높고 푸른 하늘에 야광주를 뿌려 놓은 듯이 반짝이는 별들은 고요한 대지를 향하여 무슨 묵시를 주고 있다. 나뭇잎에서는 이슬 듣는 소리가 고요하다. 여름밤이건만 새벽녘이 되니 부드럽고도 쌀쌀한 기운이 추근하게 만상(萬象)을 소리 없이 싸고 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둠 속에 잘 분간할 수 없는 히슥한 그림자가 동계사무소(洞契事務所) 앞 좁은 골목으로 허둥허둥 뛰어나온다.
고요한 새벽 이슬에 추근한 땅을 울리면서 나오는 발자취는 퍽 산란하다. 쿵쿵 하는 음향(音響)은 여러 집 울타리를 넘고 지붕을 건너서 어둠 속으로 규칙 없이 퍼져 나갔다.
어느 집 개가 몹시 짖는다. 또 다른 집 개도 컹컹 짖는다. 캥캥한 발바리 소리도 난다.
뛰어나오는 그림자는 정직상점(正直商店) 뒷골목으로 휙 돌아서 내려간다. 쿵쿵쿵…….
서너 집 내려와서 어둠 속에 잿빛같이 보이는 커단 대문 앞에 딱 섰다. 헐떡이는 숨소리는 고요한 공기를 미미히 울린다. 그 그림자는 대문에 탁 실린다. 빗장과 대문이 맞찍혀서 삐걱 하고는 열리지 않았다.
"문으 좀 벗겨 주오!"
무엇에 쫓긴 듯이 황겁한 소리는 대문 안 마당의 어둠을 뚫고 저편 푸른 하늘 아래 용마루선(線)이 죽 그인 기와집에 부딪혔다.
"문으 좀 열어 주오!"
이번에는 대문을 두드리고 밀면서 고함을 친다. 소리는 퍽 황겁하나 가늘고 챙챙한 것이 여자다 하는 것을 직각게 한다.
"에구 어찌겠는구? 이 집에서 자음메? 문으 빨리 벗겨 주오!"
절망한 듯이 애처로운 소리를 치면서 문을 쿵쿵 치다가는 삐걱삐걱 밀기도 하고, 땅에다가 배를 붙이고 대문 밑으로 기어 들어가려고도 애를 쓴다. 대문 울리는 소리는 주위의 공기를 흔들었다.
이웃집 개들은 그저 몹시 짖는다.
닭은 홰를 치고 꼬끼요― 한다.
"그게 뉘기요?"
안에서 선잠 깬 여편네 소리가 들린다.
"에구 깼구먼!"
엎드려서 배밀이하던 여인은 벌떡 일어나면서,
"내요, 문으 좀 벗겨 주오!"
한다. 그 소리는 아까보다 좀 나직하다.
"내라는 게 뉘기요? 어째 왔소?"
안에서는 문을 벌컥 열었다. 열린 문이 벽에 부딪히는 소리가 탁 하고 울타리에 반향하였다.
"초시(初試) 있소? 급한 병이 있어 그럽메."
컴컴하던 집 안에 성냥불빛이 가물가물하다가 힘없이 스러지는 것이 대문 틈으로 보였다. 다시 성냥불빛이 번득하더니 당그랑잴랑 하는 램프 유리의 부딪치는 소리와 같이 환한 불빛이 문으로 흘러나와 검은 땅을 스쳐 대문에 비치었다. '에헴' 하는 사내의 기침 소리가 들렸다. 칙칙거리는 어린애 울음 소리가 난다. 불빛이 번뜻하면서 문으로 여인이 선잠 깬 하품 소리를 '으앙' 하며 맨발로 저벅저벅 나와서 대문 빗장을 뽑았다.
"뉘기요?"
들어오는 사람을 기웃이 본다.
"내요."
밖에 섰던 여인은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나는 또 뉘기라구? 어째서 남 자는 밤에 이 야단이오?"
안에서 나온 여인은 입을 씰룩하였다.
"에구 박돌(朴乭)이 앓아서 그럽메! 초시 있소?"
밖에서 들어온 여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아첨 비슷하게, 불빛에 오른쪽 볼이 붉은 주인 여편네를 건너다본다.
"있기는 있소."
주인 여편네는 휙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더니,
"저두에 파충댁이로구마! 의원이구 약국이구 걷어치우오! 잠두 못 자게 하구!"
소리를 지른다. 캥캥한 소리는 몹시 쌀쌀하였다. 지금 온 여인은 툇마루 아래에 서서 머리를 숙였다 들면서 한숨을 휴― 쉬었다.
정주(鼎廚)에서 한참 동안이나 부시럭부시럭하는 소리가 나더니 사잇문 소리가 덜컥 하면서 툇마루 놓인 방문 창에 불빛이 가득 찼다.
"에헴, 들오!"
다 쉬어 빠진 호박통을 두드리는 듯한 사내의 소리가 들린다. 밖에 섰던 여인은 툇마루에 올라섰다. 문을 열었다.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은 마루에 떨어졌다. 약 냄새는 코를 쿡 찌른다.
"하, 그거 안됐군. 그러나 나는 갈 수 없는데……."
몸집이 뚱뚱하고 얼굴에 기름이 번질번질한 의사(김초시)는 창문 정면에 놓인 약장에 기대 앉았다.
"에구 초시사, 그래 쓰겠소? 어서 가 봐주오."
문 앞에 황공스럽게 쭈그리고 앉은 여인의 사들사들한 낯에는 어색한 웃음이 떠올랐다.
"글쎄 웬만하문사 그럴 리 있겠소마는, 어제부터 아파서 출입이라군 못 하고 있소. 에헴, 에헴, 악……."
의사는 입에 물었던 담뱃대를 뽑아 들더니 안 나오는 기침을 억지로 끄집어내어 가래를 타구에 뱉는다.
"그게(박돌) 애비 없이 불쌍히 자란 게 죽어서 쓰겠소? 거저 초시게 목숨이 달렸으니 살려 주오."
의사는 땟국이 꾀죄한 여인을 힐끗 보더니,
"별말을 다 하오. 내 염라대왕이니 목숨을 쥐고 있겠소. 글쎄 하늘이 무너진대도 못 가겠소."
하며 담배 연기를 휙 내뿜고 이마를 찡기면서 천장을 쳐다본다. 흰 연기는 구름발같이 휘휘 돌아서 까맣게 그을은 약봉지를 데룽데룽 달아 놓은 천장으로 기어 올라서는 다시 죽 퍼져서 방 안에 찼다. 오줌 냄새, 약 냄새에 여지없는 방 안의 공기는 캐―한 연기와 어울려서 코가 저리도록 불쾌하였다.
"제발 살려 줍시오, 네? 그 은혜는 뼈를 갈아서라도 갚아 드리오리! 네? 어서 가 봐주오."
"글쎄 못 가겠는 거 어찌겠소? 이제 바람을 쏘이고 걷고 나면 죽게 앓겠으니, 남을 살리자다가 제 죽겠소."
"가기는 어디로 간단 말이오? 어제해르, 그래, 또 밤새끈 알쿠서리."
의사의 말 뒤를 이어 정주에서 주인 여편네가 캥캥거린다.
여인은 머리를 푹 숙이고 앉았더니,
"그러문 약이라도 멧 첩 지어 주오."
한다.
"약종이 부족해서 약을 못 짓는데."
의사는 몸을 비틀면서 유들유들한 목을 천천히 돌려서 약장을 슬그머니 돌아본다.
"약값 염려는 조금도 말고 좀 지어 주오."
"아, 글쎄 약종이 없는 것을 어떻게 짓는단 말이오? 자, 이거 보오!"
하더니 빈 약서랍 하나를 뽑아서 땅바닥에 덜컥 놓는다.
"집에 돼지새끼 하나 있으니 그거 모레 장에 팔아 드릴게 좀 지어 주오."
"하, 이 앞집 김주사도 어제 약 지러 왔다가 못 지어 갔소."
의사는 어이없다는 듯이 입을 벌린다.
"그래 못 지어 주겠소?"
푹 꺼진 여인의 눈은 이상스럽게 의사의 낯을 쏘았다.
의사는,
"글쎄 어떻게 짓겠소?"
하면서 여인이 보내는 시선을 피하려는 듯이 미닫이 두껍집에 붙인 산수화(山水畵)를 본다.
"에구, 내 박돌이는 죽는구나! 한심한 세상두 있는게?"
여인의 소리는 애참하게 울음에 젖었다. 때가 지덕지덕한 뺨을 스쳐 흐르는 눈물은 누더기 같은 치마에 떨어졌다.
"에, 곤하군. 아―함, 어서 가보오."
의사는 하품과 기지개를 치면서 일어섰다. 여인은 눈물을 쑥쑥 씻더니 벌떡 일어섰다.
"너무 한심하구먼! 돈이 없다구 너무 업시비 보지 마오. 죽는 사람을 살려 주문 어떠오? 혼자 잘 사오."
여인의 눈에는 이상한 불빛이 섬뜩하였다. 그 목소리는 싹 에는 듯이 아츠럽게 들렸다. 의사는 가슴이 끔뜰하였다.
여인은 갔다.
한 집 건너 두 집 건너 닭 우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웃에서 개 짖는 소리도 들렸다.
포플러 잎에서는 이슬 듣는 소리가 은은하다.
"별게 다 와서 성화를 시키네!"
여인이 간 뒤에 의사는 대문을 채우고 안으로 들어오면서 중얼거렸다.
"그까짓 거렁뱅들께 약을 주구 언제 돈을 받겠소? 아예 주지 마오."
주인 여편네는 뾰로통해서 양양거린다.
"흥, 그리게 뉘기 주나!"
의사는 방문을 닫으면서 승리나 한 듯이 콧소리를 친다.
"약만 주어 보오? 그놈의 약장, 도끼로 바사 놓게."
의사의 내외는 다시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으나 두루 뒤숭숭하여 졸음이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