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자정이 훨씬 넘은 시간이었다. 한 여인이 어두운 골목을 정신없이 뛰어와 큰 기와집 대문을 두드렸다. “문 좀 열어 주오! 급한 병이 있어서 그럽니다!” 그 집은 김 초시라는 의원의 집이었다. 여인은 박돌이의 어머니였다.
잠에서 깬 주인 여편네가 귀찮은 얼굴로 문을 열었다. 뚱뚱하고 얼굴에 기름이 번들거리는 김 초시는 약장에 기대앉아 말했다. “그거 안됐군. 그러나 나는 갈 수 없소. 어제부터 아파서 나가지 못하고 있소.” 박돌 어머니는 빌었다. “아비 없이 불쌍하게 자란 아이입니다. 제발 살려 주오. 그 은혜는 뼈를 갈아서라도 갚겠습니다.” 하지만 김 초시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약이라도 몇 첩 지어 주오. 집에 돼지 새끼가 하나 있으니, 모레 장에 팔아서 약값을 드리겠소.” 김 초시는 빈 약 서랍을 꺼내 보이며 약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박돌 어머니의 눈에 이상한 빛이 번쩍했다. “돈이 없다고 너무 업신여기지 마오. 혼자 잘 사오.” 박돌 어머니가 돌아간 뒤, 주인 여편네가 말했다. “그런 거지들에게 약을 주고 언제 돈을 받겠소?”
집에서는 열두 살 박돌이가 배를 움켜잡고 뒹굴고 있었다. “제마(어머니)! 배야! 나 죽겠소!” 박돌이는 자꾸 토하고 설사를 했다. 이마는 불같이 뜨거웠다. 박돌이가 말했다. “제마, 귤을 먹었으면!” 하지만 귤이 있을 리 없었다.
뒷집의 젊은 주인이 와서 물었다. “어젯밤에 무엇을 먹었소?” “감자를 삶아 먹고…… 너무 먹고 싶어 해서, 뒷집에서 버린 고등어 대가리를 삶아 먹었지요.” “썩은 고등어 대가리를 먹으면 죽는대도! 뜸이나 떠 보시오.” 젊은 주인은 쑥을 주겠다고 하고 나가 버렸다. 박돌 어머니는 박돌이의 머리에 쑥을 놓고 불을 붙였다. 그러나 새벽빛이 밝아 올 무렵, 박돌이의 숨은 점점 약해졌다. 그리고 결국 숨이 멎었다. “박돌아! 박돌아!” 어머니는 박돌이의 가슴에 쓰러져 울었다.
아침 햇빛이 찢어진 창문으로 들어왔다. 어머니는 죽은 아들의 얼굴에 뺨을 대고 울었다. “약 한 첩, 침 한 대 못 맞아 보고 죽었구나!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학교에 가고 싶어 했는데 보내지도 못하고……. 이럴 줄 알았으면 돼지 새끼라도 팔아서 먹고 싶은 것을 사 줄걸.” 어머니는 슬픔에 피를 토하고 쓰러졌다.
그때 어머니의 눈앞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얼굴이 검붉은 뚱뚱한 남자가 박돌이의 목을 매어 가시밭으로 끌고 가는 것이었다. “제마! 제마!” 피투성이가 된 박돌이가 울며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는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밖으로 뛰어나갔다. “이놈아, 내 박돌이를 내놔라!” 사람들은 “박돌 어미가 미쳤다!” 하며 피했다. 어머니는 김 초시의 집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김 초시의 멱살을 잡았다. “네가 우리 박돌이를 불 속에 넣었지? 박돌이를 내놔라!” 김 초시는 겁에 질려 벌벌 떨었다. 약장이 넘어지고 방이 엉망이 되었다. 어머니는 김 초시를 쓰러뜨리고 그의 얼굴을 물어뜯었다. 마당에 모인 사람들은 무서워서 아무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때 누군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그까짓 놈, 죽어도 싸지! 못할 짓도 하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