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침, 조철하라는 젊은이가 풀밭에 앉아 한숨을 쉬고 있었다. 시냇물이 흐르고 꾀꼬리가 울었지만, 철하의 얼굴은 슬펐다. 철하는 어릴 때부터 소리에 마음이 잘 움직였다. 저녁 종소리를 들으면 눈물을 흘렸고, 오페라를 보면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음악가가 되었으면! 세상에서 가장 큰 예술은 음악이다.” 하지만 사업가인 아버지는 아들이 음악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철하는 집을 떠나고 싶었다.
그때 누나 경애와 영빈이라는 청년이 왔다. 경애와 영빈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영빈이 말했다. “다 틀렸어요. 아버님은 사업가의 아들은 아버지의 일을 이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철하는 실망했다. 경애가 부드럽게 철하를 달랬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아버지가 안 시키면 아주머니와 내가 너를 도와줄게. 오늘 저녁에는 오페라나 보러 가자.” 철하는 누나의 손을 잡았다. “누님, 저는 누님밖에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두 주일이 지났다. 철하는 날마다 방에서 울었다. 경애가 철하에게 말했다. “영빈 씨가 두 주일이나 소식이 없구나. 네가 한번 가 보렴.” 철하는 싫다고 했다. “그까짓 사람이 무슨 예술가예요?” 누나는 얼굴이 빨개져서 나가 버렸다.
그날 철하는 전차 정류장에서 영빈을 보았다. 영빈은 어떤 여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철하가 반갑게 인사했지만, 영빈은 차갑게 대하고 그 여자와 함께 전차를 타고 가 버렸다. 철하는 화가 났다. '누나를 속이는 나쁜 놈!' 철하는 하루 종일 거리를 헤매다가, 저녁에 원수를 갚으려고 영빈의 집에 찾아갔다. 그런데 영빈은 반갑게 철하를 맞았다. “아까 누님께서도 다녀가셨습니다. 그 여자는 저의 사촌 누이예요.” 철하의 화는 반쯤 풀렸다.
집에 돌아와서 철하가 물었다. “누님은 오늘 어디 다녀오셨어요?” “친구 집에…….” 누나는 처음에 거짓말을 했다가, 얼굴이 빨개지며 영빈의 집에 갔었다고 말했다. 철하는 눈물을 흘렸다. “이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어.” 사실 그날 경애는 영빈에게 몸과 마음을 다 주었다. 그리고 그 일이 부끄러워서 동생을 속인 것이다. 밤에 경애는 잠든 철하의 눈물을 닦아 주며 울었다. 그리고 그날의 일을 종이에 적어 두었다. 새벽에 그 글을 읽은 철하는 생각했다. '두 사람이 영원히 사랑한다면 부끄러울 것은 없다.'
다음 날 아침, 철하는 누나에게 말했다. “누님, 저는 집을 떠나겠습니다. 차라리 거지가 되는 것이 더 자유로워요. 인도에도 가고, 이집트에도 가고, 어디든지 갈 겁니다.” 그때 하인이 경애에게 편지 한 장을 가져왔다. 영빈의 편지였다.
'경애여, 그대의 동생이 나를 의심하여 나를 욕보였다. 나는 다시 그대 남매를 보지 않겠다. 그 여자는 정말 나의 애인이다.'
경애는 땅에 엎드려 울며 편지를 찢었다. “예술가는 다 악마다! 너도 예술 같은 것은 그만두어라!” 그러자 철하가 소리쳤다. “누님은 예술을 욕보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소리쳤다. “그놈을 그대로 둘 수 없어요. 제 손으로라도 혼내 주겠습니다!” 경애는 철하의 옷자락을 잡고 울며 매달렸다. “가지 마라. 너를 놓아 줄 수 없다.” 누나의 눈물을 보자 철하의 마음은 약해졌다. “그러면 놓으세요. 저는 다 그만두겠습니다. 안 가겠습니다.”
하인이 와서 마님이 부르신다고 하자, 경애는 눈물을 닦고 나갔다. 혼자 남은 철하는 책상에 엎드려 울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이상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철하는 넓은 사막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하늘에 예수가 나타나 손을 들었지만, 철하의 마음은 여전히 괴로웠다. 밤이 되자 장구와 피리 소리가 들리며 '술의 마왕'이 춤을 추며 다가왔다. “철하, 일어나게. 나와 친구가 되면 근심도 눈물도 모를 거야.” 마왕이 준 파란 물을 마시자, 철하는 모든 근심을 잊고 마왕과 함께 춤을 추었다. 아름다운 여자도 나타났다. 하지만 새벽 종소리가 울리자, 마왕과 여자는 깜짝 놀라 사라졌다.
새벽빛 속에서 멀리 바이올린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구름이 되고, 마침내 음악의 여신이 되어 철하에게 다가왔다. 여신의 눈을 보자 철하의 근심과 눈물이 모두 사라졌다. 여신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가 아이를 안듯이 철하를 안아 주었다. 철하는 여신을 꼭 붙잡았다. 그러나 여신은 다시 소리가 되어 하늘 끝으로 사라졌다. 철하는 다시 엎드려 울었다.
철하가 눈을 떴을 때, 여신을 잡았던 그의 손에는 누나의 고운 손이 잡혀 있었다. 누나는 철하의 손을 잡고 그 위에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