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이 몹시 치던 밤이었다. 윤호의 아내는 아기를 낳으려고 몹시 괴로워했다. 비바람 때문에 산파 할머니를 부르러 갈 수도 없었다. 윤호는 아내를 꼭 안고 함께 힘을 썼다. 마침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들이었다. “자지가 있네! 히히.” 윤호와 아내는 웃었다.
그런데 그때 밖에서 누가 소리쳤다. “윤호! 방축이 터지니 어서 나오!” 마을 뒤의 방축은 마을의 논과 밭을 지켜 주는 둑이다. 윤호는 뛰어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빗속에서 나무를 베어 눕히고, 돌을 담은 섬을 쌓으며 물을 막으려고 애썼다.
원래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방축을 튼튼하게 쌓았다. 그런데 작년 봄에 마을 밖으로 철도가 생겼다. 냇물 위에 철교를 놓자, 물길이 바뀌어 마을 방축으로 곧장 흘러오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군청과 도청과 철도국에 여러 번 부탁했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물은 점점 불어나 방축을 넘었다. 이제 아무도 물을 막을 수 없었다. 윤호는 집으로 달렸다. 집 안에도 물이 들어와 있었다. 윤호는 아내를 업고 아기를 안은 채, 허리까지 차는 물속을 헤치고 나왔다.
날이 밝았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 앞 작은 산에 모여 있었다. 눈앞에는 누런 물만 가득했다. 논도, 밭도, 집도 보이지 않았다. 지붕 위에 사람을 태운 채 떠내려가는 집도 있었다. 그날 새벽에 태어난 아기는 차가운 비와 물 때문에 소리 없이 숨을 거두었다. 윤호는 아기를 소나무 아래에 놓고 솔잎으로 덮어 주었다. 아이를 낳자마자 찬물에 들어간 아내는 그때부터 배가 아파서 앓기 시작했다.
집과 밭을 잃은 사람들은 삼십 리 떨어진 읍으로 나갔다. 윤호는 집 짓는 곳에서 흙을 져 나르는 일을 했다. 하루에 오십 전을 받는 일이었다. 아내는 축축한 풀막 속에서 점점 더 아팠다.
어느 날 아침, 밤새 아내를 돌보느라 한숨도 못 잔 윤호는 아침도 굶고 일하러 나갔다. 그런데 지게 다리가 부러져서 고치느라 늦어졌다. 양복을 입은 감독이 소리쳤다. “이놈은 꾀만 부리는구나!” 윤호가 사정을 말하자, 감독은 윤호의 뺨을 때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치고 배를 찼다. “너 같은 놈은 필요 없다. 가거라!” 윤호의 코에서 붉은 피가 흘렀다. 다른 일꾼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풀막으로 돌아온 윤호는 아내 옆에 누웠다. “그게 웬 피요?” “넘어져서 그렇소.” 윤호는 지난 일을 생각했다. 그는 지금까지 남에게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남보다 일을 더 많이 했고, 욕을 먹어도 참았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고 믿었다. 그런데 남은 것은 병과 배고픔과 모욕뿐이었다. 오히려 욕심 많고 못된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았다. '이대로 있으면 아내도 나도 죽는다.' 윤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깊은 밤, 윤호는 칼을 헝겊에 싸서 허리에 차고 읍내로 갔다. 가다가 여러 번 멈추었다. '내가 살자고 남을 죽여? 못 할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했다. '그놈들도 다 못된 짓을 해서 모은 돈이다.' 윤호는 부자 이주사의 집 울타리를 넘었다. 개가 짖자, 고기를 꿴 낚시를 던져 개를 조용하게 만들었다.
이주사는 그날 밤따라 잠이 오지 않았다. 갑자기 문이 열리고, 얼굴을 헝겊으로 가린 남자가 칼을 들고 나타났다. “목숨이 아깝거든 꼼짝 마라! 있는 돈을 다 내놓아라.” 이주사는 처음에 돈이 없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칼끝이 목에 닿자, 숨겨 두었던 돈 뭉치를 내놓았다. 남자는 돈을 받고 대문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나도 이 짓이 좋아서 하는 줄 아니? 나도 양심이 아픈 줄 안다. 이래야 주니까 하는 것이다.” 남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주사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하늘에는 별들만 반짝이고 있었다.